학생부 ‘복붙’하고 해외여행간 교사, 1년 만에 징계할까
작성자 정보
- 유머매니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876 조회
-
목록
본문
학교생활기록부, 떼본 적 있으신가요? 정부24에 들어가면 누구나 자신의 학생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생부는 평생 남는 학창 시절의 소중한 기록이자 대학입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교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학생부에 다른 사람의 내용을 복사해 붙여 넣었다면 어떨까요?
이런 믿기 힘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2월 대구 한 고등학교에서 적발된 일입니다. 1학년 담임교사 A 씨는 2023년 자신이 맡은 학생들 22명 전원의 학생부 '행동특성란'에 2022년 자신이 담임을 하며 작성했던 다른 학생들 자료를 통째로 베껴 제출했다 들통이 났습니다. 이 교사는 2월 말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이 일정에 쫓겨 작성 시간이 부족했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습니다.
대리 수정도 사주했습니다. 해당 교사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 될 것을 우려해 여행 도중 다른 교사에게 자신의 계정으로 접속해 대신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시스템상 다른 사람은 접속이 불가능해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학생부 마감 기한인 2월을 넘기면서 수정이 불가한 3월이 됐고, 결국 해당 학생들의 학생부에는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생뚱맞은 내용이 기재됐습니다.
■ 고쳐주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일단 원칙적으로 지난 학년도의 학생부 정정은 불가합니다. 학생부 조작을 통한 입시 비리 등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제한적으로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부 정정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제 19조에 따라 '객관적인 증빙 자료'가 있는 경우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교육청에 이 일이 알려지고 학교는 위 절차를 거쳐 학생부를 정정했습니다.
문제는 정정 내용이 제한적이란 겁니다. 해당 교사가 복사·붙여넣기 한 '행동특성란'은 교과 성적만으로 알기 힘든 학생 평가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성격이나 태도, 학급 기여도 등의 주관적인 평가는 삭제만 가능하고, 추가로 기재할 수 없습니다. 원칙에 맞게 정정하려면 간단한 사실 위주의 정량적인 내용만 기재 가능합니다.
그런데, 해당 학교 교장은 "정정 시 해당 학생들의 학생부에 '정성 평가' 부분도 정상적으로 모두 기재해 문제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교육부는 '학교가 학생부를 정정하면서 기재 불가한 내용들까지 잘못 정정한 건 아닌지 감사를 통해 확인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학생부 정정 대장은 꼬리표처럼 그대로 남기 때문에 이럴 경우 생길 수 있는 피해는 오롯이 학생 몫으로 돌아갑니다.
"학생부는 객관적 증빙자료 있는 경우에만 정정이 가능하므로 정정되는 내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기재 오류 사안에 따라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한승/교육부 교실혁신지원과장 |
■ 학교는 왜 교사를 징계하지 않았나
이 일이 세상에 드러난 건 학교 측의 미온한 대응 때문입니다. 1년이 되도록 아직 학교 재단 측은 이 교사를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대구교육청이 당시 대규모 학생부 정정 사태를 인지하고 빠른 정정 조치와 함께 교사 징계를 권고했지만, 학교는 내부 사정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교사가 최대 파면까지 이뤄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학생부 입력 마감 기한 전 입력 완료하지 못한 것, 학생 개별 특성에 맞지 않는 생뚱맞은 내용을 기재한 점 등 이는 초중등교육법 제25조 및 교육부훈령 제477호 학생부 작성 및 관리지침 위반이자 성실의 의무 위반입니다.
특히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학생부 허위 사실 기재와 부당정정(이전 학년도 학생부를 객관적인 증빙자료 없이 정정하는 것)은 시험문제 유출이나 성적 조작 등 학생 성적과 관련한 비위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하지만 학교는 교사를 감싸기에 바빴습니다.
"이 경우는 순수하게 그 당사자의 실수로 보고 있습니다. 해당 선생님은 교과 과목이 가르치는 반수가 많다 보니까…." -대구 00고등학교 교장 |
다른 교사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대부분 교사는 학생부 마감인 2월 이전 수 개월간 학생부 작성에 온 힘을 쏟는 데, 문제의 교사가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은 결국 업무를 마친 것처럼 의도한 행동이라는 겁니다. 바빠서였다면 차라리 공란으로 놔둬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대부분 선생님은 방학이 되면 두 달간 창작의 고통을 받으며 학생들 하나하나 개별 특성에 맞게 기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교사 전체에 대한 인식이 악화할까 굉장히 힘이 빠지네요.” -김봉균/경북대사대부고 교무부장 |
관련자료
-
이전
-
다음